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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전문가

청각장애인 안영회, 나사렛대학교 수어통역학과 겸임교수

by 수화맨 2023. 5.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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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초구 수화통역센터장, 청각장애인을 위한 잡지 편집장, 한국청각장애여성회 대표

세살 때 청력을 잃고 열심히 공부하여 의사가 되겠다는 꿈을 꾸지만 입모양으로 소통을 해야하는 본인이 

의사가되어 마스크를 끼고 수술대에 서서 환자를 대함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으로 의사의 꿈은 접는다.

운동에도 소질이 있었던 안영회는 테니스에도 탁월한 능력을 발휘한다. 구화로 살아오는 삶에서 

27세 처음 수어를 접한다. 

 

수어전문잡지 아름다운손짓의 편집장으로 농아인의 삶의질 개선과 수어인식개선에 공헌한 안영회는 

수화통역센터장, 한국청각장애여성회 대표로 농아인복지를 위하여 열정적인 삶의 살아간다. 

앞으로 그녀의 삶에 더욱 밝은 미소가 빛나길 희망해 본다. 

 

https://www.youtube.com/watch?v=VY5CXpQvdFA 

 

3살 때 독감때 새로나온 동네 병원에서 먹은 독한 마이싱 항생제를 먹고 열은 떨어졌지만 초등학교 다닐 무렵 소리를 잃었다. 당시 안영회님의 어머니께서는 열심으로 입모양을 보고 말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전축에 큰 울림을 통하여 소리를 느끼게 되었다.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느낄수 있었다. 

 

부모님께서는 교육을 위하여 헌신적으로 교육을 시켜주셨다. 

단한번도 슬픈내색하지 않으셨다. 

 

장애를 극복한 베토벤과 헬렌켈러의 이야기를 들려주시고 책을 사주시면서 용기를 복돋아 주셨다. 

        그런 부모님의 정성으로 피아노도 배우게 되었다. 

 

그리고 사람들과도 자연스럽게 어울려 지냈다. 

 

그 노력으로 일반학교에서 영어도 잘하게 되었다. 

 

운동도 잘하며 적응을 잘했다. 

 

친구들도 나를 좋아했고 학교 테니스부에 대표선수가 되었다. 

 

테니스에 인생을 걸만큼 테니스에 꿈을 꾸며 지냈지만 테니스 선생님의 장애로 인한 만류로 힘겨운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그럴수록 더욱더 열심히 연습했다. 

 

열심히 하겠다고 했지만 선생님이 막았다. 

 

니몸으로 불가능해 

라고 하며 막아섰다. 

심지어는 나를 구타해서 척추에 손상까지 입게되었다. 

불굴의 의지로 재활을 하고 1년후 다시 학교에 나가게 되었다. 

 

친구들은 모두 나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부모님과 친구덕에 나는 다시 테니스를 시작했고 

대학에 입학하게 되었다. 

 

지금은 대학강단에 서게 되었다. 

 

 

 

아름다운손짓이라는 수화잡지를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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